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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s
안녕, 난 돌하르방이야
돌하르방이 보내온 편지
2018.03.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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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60살이 넘었네. 내가 태어난 게 1754년이니까 말이야. 요즘 제주 곳곳에서 새로운 돌하르방 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진짜 나의 형제들은 모두 마흔여덟. 제주시, 대정, 성읍 세 곳에 흩어져 살았어. 그리고 여전히 다들 태어난 동네에 머물고 있지. 가족 중 제일 잘생긴 하르방 둘은 서울에 가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고향을 쉽게 떠나지 않았어. 그중에서도 성읍 돌하르방 들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어. 제주시, 대정 돌하르방처럼 몇 번 움직일 만도 한 데 말이야. 찢어진 두 눈만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느껴지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난 제주시 삼성혈 앞에 서 있어. 대정, 성읍에 있는 돌하르방은 워낙 작아서 나보다 형님인지 아우인지 잘 모르겠어. 내 키가 2미터가 넘거든. 그런데 다른 형제들은 내 어깨에도 못 미쳐. 겉모습만 보면 당최 우리가 친척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해. 대정 하르방은 얼굴이 너부데데하고 쌍꺼풀이 진해. 반면 성읍 하르방은 얼굴이 갸름한 계란형에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어. 이마의 깊은 주름은 나만 가지고 있더라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닮은 듯 다르단다. 대정, 성읍의 바람이 유독 거셌는지 하르방 얼굴에 버짐이 많고 피부가 무척 거칠어. 얼굴만 보면 나보다 형님 같기도 해.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를 만들어준 장인의 땀방울을 잊을 수 없어. 짧으면 열흘, 길면 20일 동안 투박한 직사각형의 큰 현무암을 끌과 망치로 하나하나 쳐내 가며 만들거든.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들어주신 것 같아. 팔과 어깨며 몸의 구석구석, 표정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주셨어. 벙거지 모자도 비스듬히 씌어주셨지. 가끔 짠해질 때도 있었어. 나를 만들다가 돌이 두 동강 나면 감옥으로 끌려가 벌을 받기도 했거든. 관에서 내린 임무를 수행하는 장인이었던 거야. 그래서 조금이라도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하셨던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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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문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야. 성문을 지키면서 힘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물론 내 옆에 한 명, 건너편에 두 명 든든한 동기들이 있었지만 말이야. 눈바람 날리는 추운 겨울에도, 숨쉬기 힘들 정도로 습하고 더운 여름에도 늘 굳건히 성문을 지켰어. 언제 누가 성안으로 들어올지 모르거든. 성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동물들을 대하다 보면 피곤해져. 가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표정을 숨겨야 할 때도 있곤 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웃어버리는 친구도 있었지. 늦은 밤 우두커니 성문 앞에서 보초를 서다 보면 나의 역사는 어디서 시작됐는지, 나의 태생이 한없이 궁금해지기도 해. 사실 난 아버지 얼굴을 잘 몰라. 몽골에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육지에서, 제주에서 다들 우리 아버지를 봤대. 누구 말을 믿어야 될지 모르겠어. 최근에는 중국에 나랑 아주 닮은 석상이 나타났대. 꽤 닮았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

제주도 하면 돌하르방. 제주도를 생각할 때 우리를 먼저 떠올리는 게 참 신기해.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누구도 우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기록한 적이 없거든. 심지어 육지에서 다녀간 유명한 관리나 유배 온 사람들의 일기장에도 우리 이야기는 없어. 그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지. 그저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키는 존재였던 거야. 최근에 이르러서야 하나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 사람들이 나의 몸에 기대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말이야. 민망하게 예나 지금이나 코는 꼭 만지고 가.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나 뭐라나.
앞으로도 제주에서 오랫동안 살고 싶어. 가능하다면 예전처럼 문지기로 돌아가고 싶어. 그게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거든. 그리고 말이야. 사실 난 이름이 ‘돌하르방’이고 싶지 않았어. 누가 태어날 때부터 할아버지고 싶겠어. 어느 날부터 동네 아이들이 내 얼굴을 보고 하르방, 하르방 하더라고. 그러더니 제주도에서 1971년에 내 이름을 돌하르방으로 딱 정해버리더라. 나이든 게 안 그래도 서러운데 이름이 돌하르방이라니. 하지만 아이들이 다정하게 불러주는데 어쩌겠어. 듣다 보니 이 이름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항상 이 자리에 있을 테니 오며가며 인사하며 지내자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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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정선, 「옹중석(翁仲石) : 돌하르방에 대한 고찰」, 『탐
라문화』 제33호,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08.
황시권, 「제주 돌하르방의 종합적 연구」,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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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제주iiin 매거진>, 2016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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