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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
제주의 책 만드는 사람들
2018.03.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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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제주 공부 이야기 

도서출판 각&박경훈

 

무슨 동력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어떤 이력은 이 질문을 참을 수 없게 한다. 20년 가까이 각을 이끌어온 박경훈 이사의 이력이 그렇다. 각은 1999년부터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는 출판사다. 4·3, 제주의 무속과 신화를 다룬 굵직한 책들은 모두 각을 거쳐 출간되었다. 박경훈 이사에게 책은 다음 세대에 전송하는 아카이브다. 가치 있는 책이라면 일단 만들고, 경제적 손해는 다른 인쇄물로 메운다. 이따금 국가사업을 따내 수익이 나면 그간 벼르던 책도 한 권 펴낸다. 그렇게 곡예를 반복하며 만든 책이 쌓여 어느덧 200권에 이른다. 대단한 신념의 소유자일 것 같은 그도 20대에는 여느 섬 청년이 그렇듯 제주를 떠나고 싶었다.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1980년대 말 송악산 군사기지 건설 반대 운동, 1990년대 골프장 건설 반대운동, 2000년 4·3 특별법 쟁취 운동 등 해야할 일이 자꾸 생겼던 까닭이다.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끝난 것은 30대 중반 무렵이었다. 그는 이곳이 자신이 살아갈 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제주에 대해 알아가는 일은 그가 섬에 남은 의미를 찾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이 섬에 대해서라면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공부할수록 모르는 것이 보였다. 탁구공만 해 보이던 세계에 우주가 들어 있었다. 자료가 많지 않아 고생한 그는 공부하며 필요하다고 느낀 자료를 직접 책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 각이 펴낸 인문, 역사, 지리서는 그 ‘제주 공부’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못다 펴낸 책이 있다. 언젠가 세어본 제주의 마을 개수는 200개 남짓. 그 마을을 주인공으로 한 잡지를 만들고 싶다. 토박이 인구가 줄고 외지인 비율이 늘어나며 경관과 공동체 문화가 격변기를 겪고있는 제주 마을의 현재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함이다. 매달 내도 17년은 족히 걸리는 장기 계획이다. 4·3을 꾸준히 다뤄온 화가이자 제주의 다양한 문화 운동을 주도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출판은 조연이라면서도 담차게 17년짜리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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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생활사> 고광민, 2016
민속학자 고광민의 제주생활사 연구를 묶은 책이자 한그루의 첫 기획 도서. 고단한 생업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꾸려나간 옛 제주 사람들의 삶과 그 안에 담긴 지혜를 생활사라는 틀로 풀어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직접 발로 뛰며 연구한 정성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제주의 새> 강창완 외 4인, 2010
한그루에서 펴낸 첫 번째 책. 제주에서 관찰할 수 있는 새 380여 종에 대한 정보를 총망라했다. 새의 모습을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원색사진을 풍부하게 싣고 출현 기간과 지역을 표기했다.
<제주 사람들의 삶과 언어> 김순자, 2016
방언학자 김순자가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 가운데 제주사람들의 삶의 이력을 담아낸 글 34편을 추려 새롭게 정리했다. 제주의 음식, 관혼상제, 의식주와 관련된 언어를 통해 제주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읽어냈다.
<뚜럼허당> 부복정 글·한항선 그림, 2016
동화 작가 부복정이 쓴 제주어 장편 동화. 똥돼지, 통시(뒷간), 올레(제주의 마을길), 지넹이(지네), 곱음재기(숨바꼭질) 등 옛 제주의 일상에서 찾아낸 소재를 재치 있는 이야기로 엮어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 마을의 풍경과 사람 이야기가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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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 알바에서 시작되었다
독립출판 파우스트&홍임정

   

서울에서 편집 디자이너 일을 했다는 사실을 제주에서는 숨기고 살려고 했다. 마감에 쫓기는 잡지사에서 편집 디자이너란 다른 사람들이 쓰고 남은 시간을 쪼개 일을 해치워야 하는 고달픈 직업이었다. 어느 순간 그 피로를 이기지 못해 제주로 내려왔다. 다른 생계 수단을 찾아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아르바이트가 인구조사였다. 한림읍의 한 아파트로 조사를 나간 어느 날 처음으로 혼자 사는 탈북자 여성을 만났다. 탈북자에 대해 아는 것도,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자꾸 생각이 났다. 북에서 가장 먼 남쪽 끝 섬으로 온 그녀는 어떻게 홀로 여기까지 흘러 들었을까. 무엇이 궁금한지도 모르면서 그저 더 알고 싶었다. 출판사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차렸다. 정확히 취재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그저 대화를 나눌 구실이 필요했다. 출판사 등록 후 명함을 파고 인터뷰집을 낼 거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사진과 그림 작업을 하는 남편과 작은 출판사를 열자고 이야기해왔던 터라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몇 년 뒤 단편소설 3편과 <붉고 푸른 당신과 나 사이>라는 인터뷰집 으로 묶여 나왔다. 홍임정 편집장은 이 책을 특별히 아낀다. 편집 디자인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덕분에 책 만드는 기쁨을 다시 느끼게 됐다. 제주에 온 뒤 소설가로 등단해 제주작가회의에서 활동하는 그녀는 함께 문학하는 동료들의 책을 엮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파우스트가 낸 열네 권의 책 가운데 여섯 권이 문학 장르다. 그중 한 권은 홍임정 편집장 자신의 소설집이다. 요즘 그녀는 동료 작가들과 탈중심성과 로컬리티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지역 출판사인 파우스트를 오래 이어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공부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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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고 푸른 당신과 나 사이> 홍임정 글·홍보람 그림·안민승 사진, 2015
홍임정 편집장이 출판사 등록을 한 계기가 된 책. 제주에 거주하는 탈북자 5명과 함께 북한에 있는 고향의 모습을 그리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과정을 다시 글과 그림, 사진으로 담았다.
<먼 데서 오는 것들> 홍임정, 2015
홍임정 편집장이 쓰고 직접 엮은 단편소설집. 제주로 이주해 겪은 일상적 체험과 여성으로서의 삶, 과거의 기억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그려냈다. 소설 쓰기부터 편집, 디자인까지 오롯이 그녀의 손에서 이루어졌기에 더욱 의미 깊은 책이다.
<바다별 이어도> 김병심 글·안민승 그림, 2014
제주에서 활동하는 김병심 시인의 첫 번째 창작 동화집. 시인의 고향 사계리 바다 너머에 있다는 전설의 섬 이어도를 제주 바닷가 마을에 사는 한 소녀와 돌고래 인형의 우정 이야기를 통해 풀어냈다. 그림은 홍임정 편집장의 남편인 안민승 작가가 그렸다.
<세계의 끝, 문학> 장이지, 2017
파우스트의 최근간. 역시 제주에서 활동하는 장이지 시인의 비평집이다. 주로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다루는데, 선배로서의 애정과 날카로운 통찰이 빛난다. 문학 환경의 변화나 문학의 위상에 대한 그의 일관된 사고와 고민 또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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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는 일을 하는 기쁨
도서출판 한그루&김영훈, 김지희

 

 한그루의 김영훈 대표와 김지희 편집장은 17년 전 각 출판사에서 디자이너와 편집자로 처음 만났다. 박경훈 소장에게 책 만드는 법은 물론 지역에서 출판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배운 두 사람은 각과 비슷한 가치를 공유한다. 육지에서는 만들 수 없는 제주만의 콘텐츠를 고민하고, 다른 인쇄물의 수익을 출판에 투자한다는 원칙도 같다. 각에서 단련되어서인지 웬만해서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책이니 10년 안에는 소진되겠지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한때 출판계를 떠나려 한 적이 있다. 김영훈 대표는 2007년 각을 나왔다. 잠시 쉬다 농사를 지어볼까 했지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와 한그루를 차렸다. 그는 책의 물성을 사랑한다. 모니터로 수십 번씩 매만지던 책이 마침내 실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잦아드는 감동을 잊을 수 없었다. 각에 남아 있던 김지희 편집장은 그보다 조금뒤에 사직서를 냈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오래떠나 있지 못했다. 그녀는 교정·교열의 시간을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고요한 몰입의 시간’이라 표현했다. 원고에 깊이 몰입하는 그 시간이 이내 그리워진 그녀는 지난해 한그루에 합류했다. 처음 함께 출판을 배우던 때의 느낌을 살려 다시 의기투합하기로 한 것이다. 1인 출판사에서 디자인과 편집, 2인 체제를 갖춘 한그루는 슬슬 기획 출판에도 욕심을 내고 있다. 지난해 두 권의 책을 냈는데, 그중 하나인 <제주 사람들의 삶과 언어>는 한그루에 방향을 제시해준 책이다. 지향하는 가치도 필자군도 각과 비슷한 탓에 다음 세대로서 고민이 깊던 차, 이 책을 만들며 ‘제주어’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제주어는 제주 출판계에 20년 가까이 몸담은 두 사람이 다른 출판인과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젊은 필자 발굴 등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많지만 고민은 없다. 그저 둘이 함께 오래오래 책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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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생활사> 고광민, 2016
민속학자 고광민의 제주생활사 연구를 묶은 책이자 한그루의 첫 기획 도서. 고단한 생업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꾸려나간 옛 제주 사람들의 삶과 그 안에 담긴 지혜를 생활사라는 틀로 풀어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직접 발로 뛰며 연구한 정성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제주의 새> 강창완 외 4인, 2010
한그루에서 펴낸 첫 번째 책. 제주에서 관찰할 수 있는 새 380여 종에 대한 정보를 총망라했다. 새의 모습을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원색 사진을 풍부하게 싣고 출현 기간과 지역을 표기했다.
<제주 사람들의 삶과 언어> 김순자, 2016
방언학자 김순자가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 가운데 제주사람들의 삶의 이력을 담아낸 글 34편을 추려 새롭게 정리했다. 제주의 음식, 관혼상제, 의식주와 관련된 언어를 통해 제주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읽어냈다.
<뚜럼허당> 부복정 글·한항선 그림, 2016
동화 작가 부복정이 쓴 제주어 장편 동화. 똥돼지, 통시(뒷간), 올레(제주의 마을길), 지넹이(지네), 곱음재기(숨바꼭질) 등 옛 제주의 일상에서 찾아낸 소재를 재치 있는 이야기로 엮어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 마을의 풍경과 사람 이야기가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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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야기가 차오를 때

마주보기 출판사&장수명

  

마주보기의 장수명 편집장은 16년 전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로 덜컥 내려왔다. 제주에 가야만 그림을 그리겠다는 화가 남편 때문이었다. 서귀포시 남원읍에 방 한 칸 빌려 살며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글을 써 받은 고료로도 살고 과외비로도 살았다. 상금을 바라고 공모전에 응모한 적도 있다. 남편의 전시회는 빚을 내어 열고, 그림이 팔리면 갚았다. 생계를 이어온 게 신기할 정도로 고단한 나날이었지만, 이주를 후회한 적은 없다. 그녀는 전생의 인연과 다시 마주한 것처럼 제주가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힘든 생활의 와중에도 제주의 풍광을 바라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차올랐다. 그렇게 떠오른 동화로 등단해 동화 작가가 됐다. 제주가 그녀에게 할 일을 일러준 셈이다. 이후 여러 출판사에서 스무 권 넘는 동화책을 냈다. 출판사와 하는 작업에서는 그녀의 의도를 온전히 관철시킬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제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흥미를 보이는 곳이 적었다. 남편과 함께 작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떤 출판사에서는 남편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또 어떤 출판사에서는 장수명 편집장의 글을 고치고 싶어 했다. 그런 이유로 책을 직접 내보기로 했고, 첫 책으로 <똥돼지>를 출간했다. 제주 전통 가옥의 돗통시를 소재로 옛사람들의 삶에 담긴 지혜를 동화로 풀어냈다. 이 책은 문화관광부 우수 도서로 선정되며 3쇄까지 찍었다. 그렇다고 극적으로 살림살이가 나아지진 않았다. 파주에 물류 창고를 두고 제주에서 출판을 하자니 비용이 많이 소요돼 책이 웬만큼 팔려도 이익이 남지 않는다. 그래도 크게 걱정은 안 한다. 돈 되는 일을 좇지 않는다는 작가다운 결기가 있다. 행복하지만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제주살이를 버티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제주의 여러 모습들을 계속해서 들려주고 싶다. 네 권이 나온 ‘제주 이야기’ 시리즈는 20권까지 계획돼 있다. 틈틈이 동화책을 내고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책도 편집해 펴낼 생각이다. 그렇게 작지만 오래 살아남는 것, 마주보기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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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돼지> 장수명 글·김품창 그림, 2012
마주보기의 첫 책이자 제주 이야기 시리즈 1권. 제주의 돗통시 문화를 담아낸 그림책이다. 아홉 살 주인공이 겪는 에피소드를 통해 똥돼지를키울 수밖에 없었던 척박한 제주의 자연환경과 그 환경을 극복하는 옛사람들의 지혜에 대해 들려준다.
<고래나라> 장수명 글·김품창 그림, 2013
서귀포 앞바다에서 우연히 남방큰돌고래를 본 부부는 각자 돌고래에 대한 작품을 그리고 써 나갔다. 한참 시간이 흐른후 남편이 그간 그려온돌고래 그림을 모아 아내가 하나의 이야기로 엮었다. 남방큰돌고래가 뛰어노는 환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제주 이야기 시리즈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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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제주iiin 매거진>, 2017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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