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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너와 나의 시간은
사진작가 이다슬
2018.03.22

본문

 

 

그럼에도, 고독한 탐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라면 ‘시간’ 아닐까.
자연에게나 인간에게나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은 반드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사진작가 이다슬은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고향에서, 그 변해버린 풍경 앞에서 옛 장소를 더듬었다. 그가
응시한 현실은 이윽고 강력한 초현실을 불러냈다.

글 최정순 / 사진 이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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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이, 130×163cm, Digital Pigment Print, 2016

 

 사진작가 이다슬은 자연의 속도와 인간의 속도가 공존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두 속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일치’에 주목한다. 외지인들에게 천혜의 자연으로 통하는 제주는 정작 토착민들에겐 낯설어진 고향이다. 난개발로 황폐화된 땅 위에서는 어느샌가 풀과 나무가 스스로 자라났다. 병치된 자연과 인간의 속도, 그리고 그 간극 앞에서 이다슬은 셔터를 눌렀다. 몽환적인 초현실이지만 극단의 현실이라는 아이러니. <호.오.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녀들이 물질하고 나오면서 참았던 숨을 내뱉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 ‘호오이’는 어쩌면 생존을 위해 몰아쉬는 인간의 한숨인지도 모른다. 변화하는 풍경을 주시하는 그의 작업은 과거 석탄 산업으로 이름을 날렸던 ‘엘도라도’ 강원도 사북에서 폐광이나 버려진 석탄 더미 위에 솟아난 초록 식물을 담은 <I know>(2009)에서부터 이어졌다. 허상의 세계를 비추는 듯한 그의 사진은 ‘안다’는 것에 대해 실상은 ‘모르’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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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이, 150×120cm, Digital Pigment Print, 2016

 

 

 거시적인 풍경을 관찰하는 것이 지금의 사진이라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시절 그가 몰두한 주제는 풍경 속에 머무는 사람들이었다. 동시대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관습이나 타자의시선에 대한 실험인 <아가씨>도 그때의 작업물이다. 참고로 이 연작의 주제는 겨드랑이 털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견해와 생각에 대해 ‘왜’를 묻는 것은 그의 작업에 방향성을 부여한다. 그의 작업은 보통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고 이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친다. 분명 사진에 담긴 것은 숲인데, 어딘가 숲의 색이 기이하다. 작가는 녹색이 너무 과해서 색을 낮췄다고 말하지만 사진에는 녹색은커녕 회색 숲이 있을 뿐이다. 그의 사진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비현실적인 오라(aura)는 적록색약인 그이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한 번도 단풍의 붉음을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자신은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이 아는건 뭘까, 또 그 반대는 뭐가 있을까 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궁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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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이, 120×150cm, Digital Pigment Print, 2015

 

 

남다르게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가 남다르게 상상하고 생각하는 토대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며 기록한 일기를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다. 사실, 오늘의 그의 작품은 일기장의 소산이나 다름없다. 성인이 된 어느 날 초등학교 때쓴 일기장에서 애월의 수산유원지 이야기를 보고 수산리를 찾아 나섰다가 ‘변해버린 풍경’에 관한 작업을 하게 됐다. 수소문해보니 그 당시 유원지의 흔적은 놀이공원 ‘탑동환타지아’에 일부 남아 있었다고. 이처럼 시간의 흐름을 뒤쫓는 과정 속에서 그가 마주치는 현실은, 기억 한 토막이 통째로 날아갈 만큼이거나 작고 초라한 흔적에 그치기도 한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을 만큼 처참하고 분노가 이는 상황도 있다. 그럼에도, 장차 무(無)의 지경이나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무언가에 닿는다고 해도 ‘변해버릴 풍경’을 기록하는 고독한 탐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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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이다슬입니다. 아라리오 뮤지엄의 ‘제주 정글’과 절물자연휴양림에서 열리는 ‘아트큐브 - 호.오.이’ 전시를 진행중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나요.
주로 어릴 적에 쓴 일기장이나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작품의 재료를 얻습니다. 그중 가장 신뢰하는 건 뉴스고요. ‘제주정글’ 전시 포스터에 쓴 작품을 예로 들어보죠. 밭을 소유하면 농사를 짓는 것이 법적 의무인데요. 땅(田)을 샀지만 법망을 피해서 농사할 생각은 없는 사람들 중에 선인장을 심는 경우가 꽤 있어요. 이런 정보를 수집하고 토지대장을 열람하거나 관공서에 문의하는 식으로 취재하고 현장에서 사진이나 영상 작업을 합니다.

 

작품을 준비하는 데 얼마나 소요되나요.
제주 소나무의 멸종 위기를 부른 ‘소나무 재선충’을 소재로 한 <소나무 이야기>는 벌레를 없앤다고 나무를 베고 독한 약을 사정없이 뿌리는 장소를 촬영한 연작이죠. 일기장을 보다가 어릴 적 친구들과 보물찾기하고 도시락 까먹던 동산이 생각나서 찾아갔더니 소나무가 여기저기 베어져 있더군요. 버려진 나무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서 도청으로 알아보고 처리하는 행적을 뒤쫓았어요. 나무를 나르는 트럭을 3년간 따라다니기도 했어요. 장소를 파악하면 매일 가서 촬영합니다. 언제 어디서 좋은 사진이 나올지 모르니까 아침에 가고 저녁에 다시 가는 거죠.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나요.
영화를 좋아합니다. 근래에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였어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메시지에 절절하게 공감했거든요. 그리고 일기장도 제 작업의 뿌리라고 할 수 있고요. 대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더라고요. 무언가를 볼 때 판타지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요.

 

제주는 어떤 의미인가요.
나의 ‘집’이자 모든 감수성과 영감을 키우고 만들어준 ‘요람’입니다. 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봄에 들려오는 종달새 소리가 있어요. 몇 년 전에 옛날의 그 소리를 들었는데 변함이 없더군요. 그 길로 돌아올 결심을 했던 것 같아요. 고향으로 온 건 2013년 무렵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호.오.이> 시리즈를 통해서 ‘땅’에 대한 작업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아마도 주인이 없는 땅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새해 봄에는 직접 설계하고 공사해서 작업실을 지을 겁니다. 하던 작업도 이어가면서 틈틈이 귀덕 앞바다에서 갯바위 낚시도 할 거고요, 산악자전거도 꾸준히 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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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제주iiin 매거진>, 2016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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