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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신예선
네모의 꿈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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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모의 꿈

설치미술가 신예선

     

 아이보리색 니트 스웨터를 꺼내면서 훅 다가온 계절을 실감한다. 
포근하고도 묵직한 한 벌. 시대를 불문한 겨울 아이템 ‘아란 니트’에 골조를 더하고 형태를 입혔다. 
위태롭게 잔뜩 잡아당긴 매무새에서 언제나 따뜻하게 보듬어줄 것 같은 흔한 니트의 이미지란 없다.

 

글 최정순 / 사진 이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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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신예선은 가을께 스페이스 예나르 갤러리에서 열린 <한림 켈틱 소환>전에서 ‘아란 니트’를 비롯해 포일 담요, 덩굴줄기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중 아란 니트는 1900년대 아일랜드 서쪽 아란제도에서 유래한 편물로, 입체적인 무늬가 있는 양모 의류를 가리킨다. 어부들이 스웨터로 즐겨 입었으며, 대개는 아내가 짠 것이었다. 흔히 ‘꽈배기’라 부르는 짜임 문양은 아내들이 발휘한 솜씨였을 뿐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된 각 씨족의 상징이었다. 한편 짜임 문양은 바다에서 비극을 겪은 어부의 신원을 확인할 때 표식으로도 쓰였다. 아일랜드를 거쳐 미국 등 세계로 전파된 아란 니트는 숙련된 편물공이 만든 고가의 핸드메이드 제품에 허락되는 일종의 보증서였다. 그리고 1962년, 아일랜드 출신의 맥그린치 신부가 ‘한림수직’을 설립하면서 제주도에 아란 니트가 뿌리를 내렸다. 하얀색 니트는 제주 여인들의 생계 수단인 동시에 신예선이 어린 시절 백화점에서 본 럭셔리의 상징이었다. 양극단의 텍스트를 내포한 니트에서 작업의 화두인 ‘중간자’를 떠올린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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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한 그이가 현대미술계에 뛰어든 20여 년 전 당시는 회화나 조소 등 순수미술 전공자가 아니면 소외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네 정체성은 무엇이냐’, ‘어째서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느냐’고 물어댔다. 날 선 질문은 신예선으로 하여금 여러 층위의 경계성을 인식하게 했다. 내면의 갈등과 혼란, 번민을 겪는 동안 자문하고 성찰하며 규명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규명하는 면면은 작업에서도 드러나는데, 작가 노트를 쓸 때는 정반합의 변증법 구성으로 기술하는 건 물론이고, 작품과 상품 역시 정립된 규율과 규칙에 맞춰 전개한다. 니트 작업은 완성 형태를 스케치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니트의 형태 안에서 사각형 니트 패턴이 어떤 크기로, 몇 조각 들어갈 것인지 결정한다. 이때 사각형이 작업의 기본 단위다. 그다음 사각형의 니트 패턴을 제작해서 니트 패턴끼리 연결시키면서 점차 입체적인 형태로 만든다. 사각형의 반복적인 배열로 머플러, 망토, 가방, 이불이 구축되는 것이다. 흔히 인형 눈으로 알고 있는 5mm 크기의 ‘구글아이’를 줄지어 붙인 ‘사과’, ‘작은 조각품’ 역시 단순하고 명료한 규칙성 아래 새로운 형태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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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선은 용도와 목적이 분명한 오브제를 모아 기이하거나 불편한 형상을 만들며 ‘구축’한다. 규칙과 규율이라는 기초를 통해 체계와 체제를 확립해가는 구축의 영역에 소재의 한계는 없다. 제주에 살면서는 더욱이 흥미로운 선택이 가능해졌다. 집 근처 철물점이나 어구집에서 몇 시간쯤 서성이다 ‘반짝이’같은 낚시 도구나 스티로폼, 과수원에서 쓰는 전지 사다리를 발굴했다. 제주의 사물에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오브제를 찾아내는 유목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간자라는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그이의 시선은 또다시 어디를 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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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요.

니트 작업의 경우 첫 단계는 스케치예요. 건축 설계도를 그리듯 정교하게 그리죠. 사각형을 몇 조각 만들 것인지, 어떤 규칙으로 이을 것인지 등 필수적인 정보를 도면에 담아요. 그리고 실의 색부터 질감, 무게, 섬유의 탄성, 유행 등의 요소를 고려해 제작하고요. 드로잉이나 페인팅 분야는 즉흥적인 감성으로 작업할 수 있지만, 저의 작업은 계획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것이 특징이에요. 또 기술이 중요해요. 작업과정을 보면 건축이나 공예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종종 섬유미술가로 소개되는데, 섬유 ‘이외’의 소재가 많네요.

섬유미술은 1970~1980년대에 붐이 일었고, 1990년대에 쇠퇴한 장르예요. 개인적으로는 매체, 즉 재료를 앞세웠던 것이 장르가 쇠퇴한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제 작업을 섬유미술이라고 규정하기가 어색해요. 작업물이 파인 아트일 수 있고, 디자인 상품일 수 있고, 공예품일 수 있거든요. 여기에도 ‘경계성’이 있는 거죠. 저는 조형 작업을 하는 작가예요. 근 20년째 꾸준히 작업했는데, 희한하게 그 사이에 세상이 바뀌더군요. 최근에는 소재나 내용 면에서 다양한 것을 들이는 작업에 사람들이 반응해요.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면서요. 새로운 건 무에서 유가 나온다기보다 전혀 다른 것들이 섞여 낯설게 보이는 거예요. 한때 단점으로 치부되었던 것이 강점으로, 특징으로 인정받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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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왜 달라진 걸까요.

우리 사회에 다양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 아닐까요. 사람들이 ‘열린 사고’에 대해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있어요. 예술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다름을 이해하는 톨레랑스(관용)의 면면이 엿보이고요.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건 작가님이 꾸준히 작업했기 때문인 듯해요.

저는 예술에서도 근면성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교, 대학원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하고, 영국으로 유학 가서 패션과 니트를 공부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디자인 회사에 다니면서 전업 작가에 대한 극심한 갈증을 자각했어요. 작가가 되면 정말 부지런히 작업만 해야겠다고 그때부터 작심한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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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에게 제주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제는 작업의 주제가 된 곳이에요. 비중 있는 소재가 되었죠. 이전 작업에는 사회적인 이슈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요. 나이가 들고, 제주에 살면서 환경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어요. 특히 제주 4·3에 대해 공부하면서 제주 역사와 사람을 이해하는 바탕이 생겼어요.

 

 

니트를 사정없이 당겨서 끊어질 듯한 모양을 취한 ‘골조의 구축’처럼 작품이 담고 있는 긴장감은 ‘중간자’라는 작가님의 아이덴티티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요.

아슬아슬한 형태를 만들어 긴장감이라는 느낌을 전함으로써 경계선에서 있다는 주제로 귀결되는 ‘시각언어’라고 할 수 있어요. 올해는 상반기에 독일과 프랑스 페어에 다녀왔고, 하반기에 제주와 서울, (레지던시 작가로) 대구를 오가면서 계획에 없던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는 동안 정착하지 않고 옮겨다니는 노매드(nomade)인 제가 제주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줄곧 생각했죠. 제주에 살면서 내면의 ‘노매디즘’이 이전보다 확립되었는데, <한림 켈틱 소환>전에서 가장 하고 싶던 이야기 역시 ‘중간자’에 대한 것이었어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살지만, 만드는 작품은 주로 설치하고 고정하는 것들이죠. 작품을 만들때 조립과 해체를 고려해야 해요. 결국 작품에 골조를 갖춰놓고 씌웠다 벗겼다 하는 방식으로 만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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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계획이 있다면요.

2019년 1월 파리에서 <메종 & 오브제>, 2월 런던에서 컬렉션을 준비 중이에요. 내년 하반기에는 서울에서 박선경 매듭장과 2인전을 가지려고 해요. 그리고 못다 한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아마도 상품 전시일 텐데, 버려진 공간에 새 카펫을 깔아놓는 식으로 갤러리가 아닌 낯선 장소에서 시도할 계획이에요. 제주에서 한 번, 서울에서 한 번, 이원 방식이어도 재밌을 듯해요. 더욱 성실하게 작업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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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제주iiin 매거진>, 2018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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